SK하이닉스 투자, AI와 HBM에 신중해져야 할 시기 (feat. 모건 스탠리 TP 하향)

오늘 (2024년 9월 19일), SK하이닉스 주가는 전일 대비 6.14% 하락한 152,800원을 기록했습니다. 지난 7월 고점 248,500원 대비 약 39% 하락한 수치입니다. 또한 한국 시각 기준으로 지난 16일, 모건 스탠리는 SK하이닉스의 목표 주가 (Target Price)를 12만 원으로 하향 조정했습니다. 종전의 TP인 26만 원 대비 54%가량 낮은 수치입니다.

이를 두고 많은 의견이 오가고 있습니다.

“아직 AI가 끝나지 않았는데 과도한 하락이다.”
“HBM 공급이 여전히 부족하다.”
“엔비디아가 여전히 HBM 공급을 초과하는 발주를 내고 있다.”
“얼마나 공급이 부족했으면 삼성전자 HBM까지 사다 쓰겠냐”

등, 대부분 HBM의 수요가 늘어나기 때문에 SK하이닉스의 주가 또한 과도한 하락이라는 메시지입니다.

저는 지난 4월에 개최한 “AI 반도체 전쟁” 밋업, 5월 아웃스탠딩 기고문 “HBM의 높은 수요와 고부가가치는 지속되지 않을 것입니다”, 6월 아웃스탠딩 기고문 “AI의 폭발적 발전이 마무리되고 있다는 신호들” 등을 통해 HBM의 고부가가치가 지속되기 어렵고 AI 시장의 CapEx 투자 성장이 한계에 도달해 가고 있음을 말했습니다.

특히 SK하이닉스에 관해서는 조심스럽게 접근하자고 말했습니다. 기술력과 주가 흐름은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2024년 4월 27일 진행한 “AI 반도체 전쟁” 밋업

즉 HBM이 기술적으로 얼마나 우수하냐 와 SK하이닉스의 주가 퍼포먼스는 연동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피터 린치 (Peter Lynch)가 말했듯 좋은 기업이 반드시 좋은 주식은 아니니까요.

또한 AI가 세상을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말과 기업의 AI 과잉 투자는 서로 구분해야 합니다. 저는 AI가 세상을 바꿀 것이며, 이미 바꿔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AI에 과잉 투자하는 기업이 변화의 승기를 반드시 잡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빅 테크 중심으로 AI 과잉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는데요, 현재는 기업의 재무 상황이 이를 지지할 수 있기 때문에 투자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수익 구조가 단단한 빅 테크라 할지라도 연간 수조원 ~ 십수 조원에 이르는 AI 투자 비용은 지속 가능한 구조는 결코 아닙니다. 세쿼이어 캐피털이 말했듯 AI 과잉 투자는 흡사 게임 이론을 보는 듯합니다.

SK 하이닉스의 주가는 저 또한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SK하이닉스의 투자는 리스크-리턴 관점에서 매력적인 구간은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세상에는 SK하이닉스 외에도 투자할 만한 좋은 자산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바로 다음의 근거들 때문입니다.


IT 반도체 업계는 원가절감에 진심인 시장이다. HBM의 고부가가치는 지속될 수 없다.

지난 4월 “AI 반도체 전쟁” 밋업에서, 저는 반도체 시장의 역사를 설명하며 IT 반도체 업계는 원가를 후려치는 시장이라는 점을 강조해서 설명했습니다. 후려친다는 표현이 다소 과격할지라도 달리 표현할 말이 없습니다. 자동차 업계의 원가절감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에요. IT 업계의 원가절감은 수만 달러의 비용을 센트 단위로 낮추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x86 CPU의 전신이자 CPU 역사의 시작인 인텔 4004 또한 원가 절감 의지가 반영된 결과입니다. 범용성을 높여 개발비와 유지 보수비를 포함한 총비용 관점에서, 종전에 사용했던 특화칩보다 범용칩인 인텔 4004가 월등히 우수했습니다. 더 낮은 비용으로 높은 성능을 제공해 줄 수 있었죠.

이후, CPU의 역사는 2년마다 성능은 2배가 되고 가격은 유지되는 “무어의 법칙”이 40여 년간 지속됩니다. 메모리 스토리지에서는 매년 용량이 2배씩 늘어난다는 “황의 법칙”이 지속되었죠.

즉 연산 성능이나 저장 용량 모두 가격 대비 성능과 용량이 해가 거듭할수록 지수적으로 개선되었습니다. 쉽게 말해서 저렴해졌다는 거죠. 게다가 단지 몇 퍼센트 수준의 개선이 아닌, 2배 단위의 개선이 꾸준히 이루어졌습니다. IT 반도체의 원가 절감 특성은 다른 어떠한 산업군 보다 강력하며 지속성이 뚜렷합니다.

HBM이라고 해서 여기에서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HBM은 기술의 발전을 통해 가격 대비 성능이 지속적으로 개선될 것입니다. HBM의 일반 메모리 대비 가격 멀티플은 점점 낮아질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SK하이닉스의 HBM 수익성 약화 (악화 아님)로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IT 산업은 소프트웨어를 통해 원가를 후려친다. HBM의 수요는 성장하더라도, 수요의 성장세는 안정화될 것이다.

IT 업계는 반도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를 통해서도 원가를 후려칩니다. HBM이 비싸다면 HBM을 꼭 써야 하는 곳에만 사용하도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적화해 낼 것입니다.

IT 산업은 기계공학이나 화학공학 등 대규모 설비투자를 동반하는 산업과는 달리, 변경 사항을 즉시 확인할 수 있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소프트웨어를 통한 최적화가 발달되어 있고, 그 결과를 곧바로 적용할 수 있다는 큰 장점도 갖고 있습니다. 즉 HBM을 사용하지 않도록 최적화하고, 그 결과가 괜찮다면 곧바로 적용해서 HBM 수요를 줄이는 비용 최적화를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내에 해 낼 수 있다는 거죠.

업계에서는 HBM 사용을 반드시 필요한 영역 중심으로 하고 있고, 그 외의 영역에서는 양자화 등 다양한 최적화 기법을 적용해서 HBM 의존도를 낮추고 있습니다. 메타 (Meta)가 만드는 LLaMa 모델은 소형 모델이 중심이며, 이는 HBM 의존성을 대폭 낮춥니다. 모델을 최적화하여 HBM 수요를 줄인 원가절감의 예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메타는 IR을 통해 추천 모델에서는 HBM을 사용하는 고가의 엔비디아 장비 사용이 필수가 아니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메타가 만드는 추천 시스템용 AI 반도체 MTIA는 일반 GDDR 메모리를 사용하기도 하고요. 추천 모델 학습과 추론이라는 워크로드에서는 HBM이 필수는 아니라는 겁니다. (참고로 메타가 AI에 투자해서 광고 매출이 22%가량 상승했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이 영역은 AI 투자 경쟁이 이루어지는 GenAI 섹터는 아닙니다. 매우 전통적인 영역의, 굳이 고성능의 엔비디아 장비와 HBM이 필요하지 않은 영역입니다. 즉 누군가는 이 메시지를 보고 AI 투자가 돈을 번다고 판단할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AI 투자가 돈을 날리고 있다고 분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IT 산업은 시작부터 원가절감을 해 왔습니다. 이 업계는 하드웨어든 소프트웨어든 원가절감에 진심이라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HBM 제어의 높은 난이도는 수요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HBM 제어가 어렵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중 하나입니다. 이는 HBM 수요 성장의 레버가 당분간은 엔비디아에게 여전히 있을 것임을 말합니다. 이 현상이 좋은 일일까요? HBM 공급 업체, 즉 SK하이닉스 등에게는 결코 좋은 일이 아닙니다.

HBM은 제어가 까다롭습니다. 고성능이고 핀 수가 많아진 만큼 제어 난이도도 그만큼 높아졌어요. 그래도 어떻게든 노하우를 쌓아 컨트롤러를 만들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데 이렇게 빠른 속도의 컨트롤러는 GPU 다이 내에 위치해야 제 속도를 낼 수 있습니다. 즉 HBM은 GPU 설계에도 큰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반도체는 부동산과 유사합니다. 비싸고 한정된 공간 내에 필요한 회로를 배치해야 하죠. 즉 HBM 컨트롤러가 GPU 다이 내에 차지하는 면적만큼, 연산에 필요한 회로를 빼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게다가 HBM 컨트롤러는 I/O 인터페이스이기에, GPU 다이 내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입지가 좋은 위치에 배치해야 합니다. 게다가 I/O 인터페이스는 전력 소모량도 매우 큽니다. 손톱만 한 GPU 다이가 수백 와트의 전력을 빨아 당기는 게 신기하다고 생각한 적 있으신가요? 심지어 그 회로들이 나노 단위인데 말이죠. 반도체에서 높은 전력 소모량을 보이는 회로는 주변 회로 설계에 영향을 줍니다. HBM 컨트롤러를 GPU 다이에 위치시키는 일이 그만큼 까다롭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HBM 컨트롤러를 HBM에 패키징해서 공급하려 시도 중입니다.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요. 양산한다 하더라도 칩렛으로 붙여야 할 것이기에 제조 공정과 발열 문제가 뒤따릅니다. 풀어야 할 숙제가 많습니다. 한동안은 다이에 HBM 컨트롤러를 붙이는 식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엔비디아와 동일한 HBM을 사용하더라도 다른 칩에서는 그만한 HBM 성능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는 앞서 설명한 HBM 컨트롤러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HBM 컨트롤러를 만드는 기술 자체가 부족한 것, 그리고 GPU 다이에 그 컨트롤러를 박아 넣기 힘든 것 모두 부족합니다. HBM은 여전히 규격에서만 표준이며, 이를 제어하기 위한 기술 축적은 깊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HBM 제어의 어려움은 엔비디아를 제외한 다른 벤더들이 HBM 사용을 소극적으로 만드는 이유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비싼 돈 들여 HBM을 구입하더라도 제 성능을 낼 수가 없으니까요. 특히 마진이 가장 큰 최신의 고성능 HBM에서 이러한 차이는 더욱 드러나게 됩니다. 그래서 조금 느리더라도 제어 노하우가 더 쌓여 있는 구형 HBM을 구입하는 것입니다. 구형 HBM을 사용하는 만큼 최신 HBM 수요는 줄어들 것이며, HBM 공급자의 마진을 약화시킬 겁니다.


4. 주가는 단지 내년 시장만 보고 프라이싱 하지 않는다, 향후 2~3년을 본다.

내년에도 엔비디아의 HBM 발주는 이어집니다. 공급을 초과하는 규모의 발주라고 하죠. 하지만 2026년에도, 2027년에도 이 상황이 지속될까요? 즉 HBM 쇼티지가 지속될 수 있을까요?

주가는 단지 내년 시장만 보고 프라이싱 하지 않습니다. 올해 4월과 5월, 제가 HBM에 대한 경계 메시지를 내었을 때는 HBM 시장이 너무 뜨거웠기 때문에 말하기가 무척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런 시기에는 의례 쭉쭉 뻗어나갈 것처럼 생각하고 밸류에이션도 To the Moon이 됩니다.

지금의 SK하이닉스 주가는 단지 내년도만 바라본 결과는 아닐 것입니다. 내후년, 그리고 그 이후도 바라보고 프라이싱 한 것이겠죠. 앞으로도 꾸준히 HBM 수요의 “성장”이 이어질까요? HBM 수요는 꾸준히 이어지겠습니다만, SK하이닉스의 주가를 이만큼 높인 것은 HBM 수요의 “증가폭”이 가팔랐기 때문입니다. HBM 수요의 성장, 즉 “HBM 수요의 증가폭”이 앞으로 3년간 급격하게 성장할까요?

이에 대한 판단은 개인의 몫으로 남겨 두겠습니다.


5. 5G 장비주의 역사에서 배워야할 때

5G는 확정된 미래였습니다. 장비주도 초반에 힘을 좀 받았죠. 그러다 무역 분쟁이 터지며 실적과 무관하게 가격이 꽤 꺾였습니다.

시간이 흐르자 약속된 장비 매출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예상치 보다 조금 낮았지만 납득할 만한 수준이었죠. 하지만 주가는 계속 흘러내렸습니다. 5G 장비주를 장기 투자했다면 대부분 좋지 않은 성과를 보였을 겁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5G 장비는 망 구축 초반에 가장 큰 매출을 일으킬 겁니다. 이 시기는 장비 매출이 Zero에서 신규로 창출되는 시기이기에, 장비주의 밸류에이션도 실제 실적 보다 향후의 시장 성장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또한 일정 내에 5G 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특성상, 장비사가 가격 협상력도 조금은 갖고 있었을 것이고요.

그러나 망이 구축되어 운용을 시작하면 장비사는 더 이상 가격 협상력을 갖지 못합니다. 발주처는 장비 가격을 후려칠 것이고, 높은 가격을 고수하는 업체는 시장에서 배제되어 나갈 것이고요. 아마 장비 일부를 교체하는 한이 있어도 높은 가격을 부르는 업체를 선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장비주는 Zero에서 신규로 매출이 창출되는 시기에는 “시장의 성장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 밸류에이션 되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매출이 발생하기 시작하니 “향후 예상 실적” 기반으로 다시 리레이팅이 되죠. 낮은 마진율과 낮은 성장률은 5G 장비주의 밸류에이션을 크게 낮추었습니다.

5G 장비가 규격화된 상품, 즉 대체 가능성 높은 코모디티가 되자 밸류에이션 단물이 빠진 것입니다.

HBM 또한 이와 비슷한 길을 걸어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러 애널리스트들은 AI의 미래가 HBM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다르게 생각해요. IT 산업은 50년 이상 원가 절감에 진심인 시장입니다. 그 어떠한 특수 칩셋도 결국에는 범용화되어 대체 가능한 코모디티가 되었어요. 심지어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x86마저도 ARM을 통해 대체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입니다.

반대로, 저는 “HBM이 AI 시장의 미래다”라고 말하는 애널리스트들에게 질문하고 싶습니다. 반백년이 넘는 IT 산업 역사상 코모디티화되지 않은 반도체가 있습니까? HBM이 AI 시장의 미래라고 생각하는 근거는 무엇인가요?


이제는 2026년과 2027년의 AI 반도체 수요를 가늠해 봐야 할 시기

HBM은 성장을 지속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수적인 성장을 지속해낼 수 있을지는 의구심이 듭니다. 반드시 최신 HBM을 써야만 하는 기업이 전 세계에 그렇게 많을까 싶습니다. 대부분은 한두 세대 전 엔비디아 장비로 충분합니다. 이제 2026년과 2027년의 AI 반도체 수요를 바라봐야 할 시기에 접어들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지점들에서 모건 스탠리의 SK하이닉스 TP 하향이 합리적이라는 의견입니다.